만일 대한민국의 독립이 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뤄졌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우리 말과 글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끔 가지곤 한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은 기간은 36년, 즉 한 세대의 시간이다. 만일 한 세대의 시간이 아닌 두, 세 세대의 시간이 흐른 후 독립이 이루어졌다면 그때도 일본을 생각하는 태도가 지금과 같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의 의문은 시작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고민의 출발점은 식민 지배를 받았던 적지 않은 나라의 민중들이 독립 후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그들의 언어, 즉 영어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음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중들이 제국주의에 대하여 우호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식민지 통치 기간이 오래되어서 어쩔 수 없이 제국주의에 동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특히나 언어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만일 일본의 식민 지배 시간이 50년 이상이 되었다면 우리도 일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지 않을까?

무척이나 끔찍한 상상이다.

 

이번에 본 “한 톨의 밀알”은 전에 감상평을 올렸던 “피의 꽃잎들”의 저자 “응구기 와 티옹오”의 장편 소설이다. 시기적 배경을 보면 “피의 꽃잎들”은 케냐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의 혼란스러움을 배경으로 쓴 책이고, “한 톨의 밀알”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날까지 4일 전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투쟁을 하다가 탄압 받는 케냐인의 삶과 개인의 생각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큰 틀의 거시적인 시각보다는 각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개인의 시각에서 적어 나간 것이 특징이라고 보인다. 시대적 배경은 홍콩 반환을 배경으로 했던 찬호케이의 13.67과도 유사하다.





케냐의 독립을 추구하는 독립 투사들과 민중들의 모습이지만 전투적이거나 격정적인 소설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주요 등장인물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개인의 삶을 방해받아서 뜻하지 않은 행위를 하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는 케냐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했던 대한민국의 역사와 비슷해 배경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등장 인물의 이름이 생소해 이름 외우기가 쉽지 않았다. 책 중반을 읽은 후에도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책 앞장을 다시 뒤적이곤 했었다.


지난번에 읽었던 “피의 꽃잎들”에서는 흑인 주인공의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아서 힘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그런 어려움은 없었다. 아마도 아프리카 소설을 한 번 읽어 본 것이 나름 도움이 된 듯 싶다.


작가 “웅구기 와 티옹오”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쾌 유명한 아프리카 작가이다. 물론 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만일 조만간에 “응구기 와 티옹오”가가 노벨문학상을 탄다면 나름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을 가지게 될 것 같다.  93점



PS 

곰곰히 생각해보니 

"피의 꽃잎들"에서는 일부 등장 인물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고, "한 톨의 밀알"에서는 이미지가 잘 떠오른 것은 내게 큰 문제 있기 때문이었다.


"피의 꽃잎들"을 읽으면서 내가 고민했던 부분은 지배자로서의 흑인의 이미지가 떠 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한 톨의 밀알"의 등장 인물 대부분은 피지배자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흑인의 이미지가 얼마나 잘못 되어 있는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Posted by 빨간장갑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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