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진행자 이동진은 가끔 환상의 빛을 얘기한다. 그리고 방송을 듣는 독자들도 이에 호응하여 같은 책을 거론하고는 한다. 늘 얘기하지만 독서의 구력이 적은 나는 미아모토 테루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책을 쓰고, 어떤 얘기를 주로 하는 지 잘 모른다. 다만 이 책이 거론될 때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에 알라딘 헌책방에서 검색해보고는 한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나뿐만 아닌지 헌책방에서 이 책을 사기 어려웠다. 부인과 말 다툼을 하고, 임시 서재로 쓰고 있는 딸 방에 틀어 박혀 시위 아닌 시위를 하며 알라딘을 검색하다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주문 후 배송된 책은 헌책답지 않게 깨끗했고, 읽기에 부담되지 않은 크기와 분량이었다. 다만 흰 표지의 책에 비해 속지는 누런 갱지의 빛깔을 띠고 있어 노안 때문에 고생하는 나로서는 밤에 읽기 불편했다.

 

이 책은 자살한 남편을 향해 쓰는 서간문 형식의 글이다. 남편이 자살한 후 재혼을 하여 새로운 가정에 몸담고 있는 여인이 죽은 전남편에게 자신의 삶을 전해주며, 남편이 왜 죽어야만 했을까를 혼잣말처럼 되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글의 필체는 아주 간결하고, 부드럽다. 내용 또한 거칠지 않고, 하얀 여백에 동양화를 그리듯 아주 매끄럽게 쓰여져 있어 읽기에 편한다. 이 책에 속한 4편의 단편이 모두 비슷하다. 주제 또한 모두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책의 단편들에는 모두 죽음을 얘기하고 있지만 죽음 원인을 모두 밝혀주지는 않는다. 원인을 밝혀주지 않는 글을 읽으면 과거에 나는 무척이나 불쾌해 했다. 하지만 책 읽는 구력이 늘어나면서 조금씩에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스스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왜?라는 궁금중은 늘 조금씩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일고 그동안의 나의 사고가 너무 편협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얼마 전 읽은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의 포함된 단편 한지와 영주를 읽은 후 빨간 책방에서 이루어진 최은영 작가의 대담을 들은 후이다.

이 단편을 읽고 나면 한지와 영주가 왜 헤어졌는지 나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 최은영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라고.

 



 

이 한 마디가 나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꽂혔다. 우리 삶에는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수 많은 사건들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은 더욱 그렇다. 내가 누군가와 헤어질 때는 항상 그에게 내가 너와 왜 헤어져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만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 주위에 가끔 일어나는 누군가의 죽음, 특히 자살 사건에 대해서도 같다.

 

우리는 뉴스와 인터넷을 통하여 접하는 수 많은 죽음에 대하여 왜?를 묻는다. 그리고 반드시 왜가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궁금해 한다. 하지만 이유는 없을 수도 있고, “그냥일 수도 있다. 그리고 죽은자는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누구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다. 비록 남아 있는 사람은 이유가 궁금하고, 이유를 알아서 원한을 밝혀주고 싶지만 사실 알아도 밝혀 줄 수 없지만- 죽음을 택한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원인을 알고자 하는 것은 개인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단순한 욕심일 뿐이다.

 

환상의 빛에 나오는 남편도 그러했을 것이다. 언뜻 보면 주인공의 남편은 죽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가 자살을 택할 이유는 수 없이 많을 수 있다. 다만 그동안 그는 더 많은 이유로 죽지 않고 살아야만 했던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자살이 아니라 그냥 사고사일 수도 있다.

 

쇼코의 미소의 한지와 영주와 환상의 빛을 읽고 요즘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세상에 모든 것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반드시 내가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와 관련된 누군가는 나에게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사고 하는지를 알려줘야 하는 의무가 없다는 것 등.

가족이나 친구 등 나와 친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이유를 알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도움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없다. 또한 그들이 나에게 그것을 알려줘야 하는 당위는 없다.

 

나는 내가 오지랖이 넓다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 오지랖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하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궁금증 해소를 위한 이기심을 만족하는 이기주의적인 사고가 아닌가를 되돌아 보게 된다. 세상에는 이유가 없는 일도 있고, 이유가 있다 해도 내가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점수 89

 

Posted by 빨간장갑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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